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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과 증심사 주변 여행 후기
  • 작성자먼지잼
  • 작성일시2017/03/21 12:02
  • 조회수1180

무등산과 증심사 주변 여행 후기 사진 0

◯ 2017년 1월 27일 오전 7시 37분에 증심사에 오르다.
◯ 2017년 1월 27일 오후 12시 하산하다.



무등산과 증심사 주변 여행 후기





 설 명절 연휴 이른 아침 날씨가 포근했다. 적적할 적에 절에 다녀오면 좋겠다 싶어 여러 생각 않고 채비를 했다. 무등산(無等山) 기슭에 자리잡은 광주의 대표 사찰인 증심사(證心寺)로 향했다.


 가볍게 간 산책이지만, 증심사의 유래와 유물을 잠깐 찾아보았다. 한국관광공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광주의 대표적 사찰, 무등산 증심사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있다. 통일신라 때 고승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이 517년에 세운 절로 고려 선종 때(1094년) 혜소국사가 고쳐 짓고 조선 세종 때(1443년) 김방이 삼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의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의 3대 선사가 4창(四創)했다고 한다. 그후 신도들의 정성으로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6 ·25전쟁 때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야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복구되었다.



증심사의 유물과 문화재


증심사의 유물로는 오백전(五百殿)과 비로전(사성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131호), 신라 말기의 석탑인 증심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1호), 범종각, 각층의 4면에 범자가 새겨진 범자칠층석탑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특히 오백전은 무등산에 남아 있는 사찰 건물들 중 현재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세종 25년)의 건물로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과 계통을 같이 하는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심포 양식으로 그 희귀성이 돋보인다.
이에 1986년 11월 1일 광주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찰이다.


 증심사를 대표하는 유물은 무엇인지, 유래는 얼마나 오래됐는지 하는 것보다 더 내 관심을 끈 것은 증심사 입구 왼쪽 언덕 언저리에 늘어선 승탑들이다. 테두리가 둥그런 모습이 꼭, 화순 운주사에서 보던 감동을 자아냈다. 어느 이름 없는 석수가 소박하고 투박하게 다져 놓은 탑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국보니 보물이니 하는 식으로 유물에 대한 명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절은 자리앉음새가 중요한 특징이라고 어느 책에서 여러 번 읽은 생각이 났다. 증심사 앞에는 계곡이 흐르고, 부드러운 듯 가파른 듯 산능성이가 아늑하게 증심사를 감싸고 있어, 유유자적하는 무릉도원이 예가 아닐까 한다.


 무등산의 사계절도 여느 명산 못지않게 아름다운데, 나는 특히 초여름의 무등산을 좋아한다. 나뭇잎 무성해질 무렵에 풀여치 풀 뜯는 소리 들으며 걸을 때 오는 마음의 평화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가 없다.


 1월에 눈 덮인 증심사에 오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사실 날이 좋을 때는 국립공원이다 보니 등산객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한가로이 무릉도원에 온 듯한 상념에 잠길 시기가 한겨울이라는 것은 역설이다. 1월의 설국(雪國)을 즐기려면 무등산 중봉까지는 올라야 하는데 등산 채비로 나왔다고 할 수 없는 상태여서 단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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