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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 기록하다

동구 × 기록하다

광주의 원도심인 동구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 5·18민주화운동 등 근·현대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구에서는 동구출신이거나 동구에서 활동한 근·현대 역사인물에 대한 발굴 및 기록작업을 통해 『동구의 인물 1,2』를 발간하였고, 본 발간물에 수록된 인물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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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8건 페이지 1/2

  • 최흥종(催興琮) 1880.05.02. ~ 1966.05.14.동구 불로동 출생
    1912년 광주최초의 한센인병원인 ‘광주나병원’을 설립한 이후 평생을 병자와 빈민을 위한 구호사업과 교육활동에 전념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으며 1921년 광주최초의 목사가 되었고, 광주YMCA, 신간회 등 광주 곳곳의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66년 금식기도에 들어간 최흥종은 같은 해 별세하였다.
    #나병퇴치운동 #궁민구제활동 #광주최초의목사 #광주YMCA #신림교회
  • 최원순(崔元淳) 1896.12.18. ~ 1936.07.06.동구 수기옥정(수기동) 출생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던 최원순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민족과 언론의 자유수호를 외쳤던 인물이다. 전조선기자대회를 제안하고 조직하기도 했던 최원순은 일제를 ‘악당보호정치’라 비판한 「횡설수설」 필화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부인 현덕신과 함께 1927년 광주로 귀향, 동아일보 광주지국장으로 취임하였고, 최흥종 등과 함께 ‘계유구락부’를 창립하는 등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도 참여하였다.
    #2·8독립선언 #횡설수설필화사건 #전조선기자대회 #동아일보 #석아정
  • 현덕신(玄德信) 1896.01.12. ~ 1963.11.27.황해도 해주 출생
    현덕신은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재학 중 2·8독립선언 준비를 위해 독립자금을 전달하였고, 졸업 후 조선의 세 번째 여성의사가 되었다. ‘근우회’에서 활동하는 등 여성운동에 몸담기도 했던 현덕신은 남편 최원순과 함께 광주로 내려와 ‘현덕신병원’을 개업하여 호남최초의 여성의사로서 의술을 펼쳤고 병원 내에 유치원과 보육학교를 설립하는 등 어린이보호와 교육사업에 전념하였다.
    #호남최초의여성의사 #현덕신병원 #신생유치원 #신생보육원 #근우회
  • 최한영(崔漢泳) 1899.05.15. ~ 1990.08.06.동구 호남동 출생
    광주공립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 동창들이 주관하여 불로동의 옛 측량학교 자리에 설치한 ‘신문잡지종람소’의 회원으로서 1919년 광주 3·1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선언서와 태극기 준비를 맡았던 최한영은 이로인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소 이후에는 광주청년회의 지도부를 맡는 등 사회운동을 이어나갔다. 1980년에는 광주의 대표적 원로로서 5·18수습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하였다.
    #문잡지종람소 #광주3·1운동 #광주청년회 #고무신상회 #5·18수습대책위원회
  • 최혜순(崔惠淳) 1900.09.02. ~ 1974.02.16.동구 학강정(학동) 출생
    최혜순은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상해로 건너가 혜생의원을 개원,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한 활약을 펼쳤다. 1927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철과 결혼, 임정 산하단체인 상해애국부인회에서 집사장을 맡기도 하였고, 1931년에는 임시정부 전라도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여성으로서는 세 번째 의원으로 선임되었다. 1937년 광주로 귀향하다가 체포, 해방이 될 때까지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혜생의원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애국부인회 #임시정부전라도대의원 #김철
  • 장재성(張載性) 1908. ~ 1950.07.동구 금계리(금동) 출생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 출신 장재성은 1926년 왕재일 등과 함께 광주학생운동을 이끈 모체가 되었던 비밀결사 ‘성진회’를 조직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하였고, 광주학생투쟁을 항일민족운동으로 전국화하기 위한 활동을 추진하다가 구속, 7년형을 언도받았다. 광복후 광주청년동맹을 조직하였고, 월북하였다가 체포되어 광주형무소에 수감, 6·25전쟁이 발발하자 사살되었다.
    #광주고등보통학교 #성진회 #광주학생독립운동 #장재성빵집 #광주청년동맹
  • 장매성(張梅性) 1911.06.22. ~ 1993.12.14.동구 금계리(금동) 출생
    장매성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의 동생으로, 박옥련 등과 함께 1928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독서회회원들은 부상학생들을 보살폈는데, 조사과정에서 모두 검거되어 장매성은 2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독서회 #광주학생독립운동
  • 송홍(宋鴻) 1872.09.07. ~ 1949.06.18.전남 나주 남평읍 출생
    송홍은 1904년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헌병에게 끌려가 고초를 당하였고, 1905년 중국 천진으로의 여행을 계기로 신교육의 도입과 혁신을 주장했다. 1909년 공립광주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를 거쳐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생들의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의 준비공판이 있던 날 아침, 학교에 사표를 제출하고 은거하였다.
    #민족의식고취 #광주고등보통학교 #광주학생독립운동 #고분당
  • 박오봉(朴五鳳) 1904.04.07. ~ 1949.04.21.동구 금정5가(금남로5가) 출생
    박오봉은 16세에 광주일보사 인쇄직공으로 고용되었고, 19세 봄에 광주소재 죽구인쇄소에서 일을하였다. 1925년 결성된 인쇄직공조합을 통해 노동운동을 하면서 항일정신을 키워나갔다. 1928년에는 조선소년총연맹과 전남청년연맹에서 활동하면서 핵심적인 활동가로 부상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1차 시위가 일어나고 박오봉은 장재성 등과 함께 조직적인 시위를 계획,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았다.
    #죽구인쇄소 #인쇄직공조합 #조선소년총연맹 #전남청년연맹 #광주청년동맹
  • 김용환(金容煥) 1900.04.15. ~ 1969.04.25.동구 대인동 출생
    김용환은 민족지 『동아일보』의 광주지국 총무로 입사, 1924년 광주지국장에 취임하여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걸었다. 광주YMCA 및 신간회 등 사회단체의 설립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다. 광복 후에는 전남건국준비위원회 창립위원으로 참여하였고, 재야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 눈을 감았다. 광주최초의 여기자로 활동했던 최현숙이 부인이다.
    #동아일보광주지국장 #광주YMCA #광주신간회 #계유구락부 #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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