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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 기록하다

동구 × 기록하다

광주의 원도심인 동구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 5·18민주화운동 등 근·현대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구에서는 동구출신이거나 동구에서 활동한 근·현대 역사인물에 대한 발굴 및 기록작업을 통해 『동구의 인물 1,2』를 발간하였고, 본 발간물에 수록된 인물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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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영규(尹永奎) 1935.10.10. ~ 2005.03.31.전라남도 광주군 금동 출생
    윤영규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 후, 목포 영흥 중고등학교 등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교육현장의 부당함에 맞섰다. 1986년 전국의 1,300여명의 교사들이 참여한 ‘5·10교육민주화선언’을 주도하였고,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창립되자, 윤영규는 초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005년 마지막날 갑자리 쓰러진 그는 국립5·18민주묘지에 잠들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 #초대위원장 #5·10교육민주화선언
  • 이한열(李韓烈) 1966.08.29. ~ 1987.07.05.전남 화순군 능주면 출생
    이한열은 동산초, 동성중, 광주진흥고를 거쳐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학생운동조직에서 활동하며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87년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고,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향한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져가는 가운데 6월 9일 결의대회에서 경찰이 발포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7월 9일, ‘애국학생 故 이한열열사 민주국민장’이 거행되고, 그는 망월동 묘역에 안장되었다.
    #6월항쟁 #1987 #대통령직선제 #박종철고문치사사건 #동산초
  • 조아라(曺亞羅) 1912.03.28. ~ 2003.07.08.전남 나주군 반남면 출생
    조아라는 평생을 여성운동과 민주화·인권운동에 헌신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에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거부 등으로 옥고를 치렀고, ‘성빈여사’, ‘별빛학원’, ‘계명여사’ 등을 운영하여 여성들에게 자기 성장의 기회를 주었다. 광주 5·18 민중항쟁 기간에는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며 구속자와 부상자들을 돌보며 헌신했다. 1992년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여성토론회에 한국 여성계 대표로 참석했다.
    #여성운동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성빈여사 #5·18수습대책위원 #남북통일
  • 김경숙(金景淑) 1958.06.05. ~ 1979.08.11.전남 광산군 비아면(광산구 비아동) 출생
    김경숙은 학동에서 누에고치 공장을 다녔고, 동구 소태동에 위치한 광주남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로 상경하여 한품섬유, 태진산업 등을 거쳐 1976년 (주)YH무역에 입사, 녹지야학에서 공부하며 YH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79년 3월 회사측이 부실 경영으로 폐업을 감행하자 노조측에서는 폐업철회를 위한 신민당사 농성에 들어갔고, 8월 11일 경찰의 강제해산 과정에서 김경숙은 의문사하였다.
    #H사건 #여성노동운동가 #녹지야학 #의문사
  • 박용준(朴勇準) 1956.07.09. ~ 1980.05.27.
    박용준은 1972년 고등학교에 입학할때까지 학동의 ‘영신원’과 ‘무등고아원’에서 성장하였고, 이듬 해 광주YWCA신협에 수금사원으로 근무하였다. 1978년, 함께 영신원에서 성장한 김영철을 만나 지역개발운동에 참여하였다. 1980년 5월항쟁 당시 윤상원과 함께 ‘투사회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5월 27일 새벽, YWCA 2층에서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스물 다섯 짧은 생을 마감했다.
    #무등고아원 #광주YWCA #5·18민중항쟁 #투사회보
  • 명노근(明魯勤) 1932.09.05. ~ 2000.01.10.
    명노근은 1975년 전남대 영문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1978년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으로 해직, 1979년에는 YWCA구국기도회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하였다. 1980년 5·18항쟁의 중심에 있었고, 1988년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구성되자 명노근 선생은 청문회에 출석하여 항쟁의 진실을 증언하였다. 이후 5·18기념재단 이사로 활동하는 등 지식인으로서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였다.
    #우리의교육지표 #5·18수습대책위원회 #청문회증언 #5·18기념재단이사
  • 이철규(李哲揆) 1964.05.06. ~ 1989.05.06.
    1982년 조선대학교에 입학, 학원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고, 조선대학교 교지 ‘민주조선’의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현상수배 되었고, 1989년 5월 3일 택시를 타고 이동 중 광주 북부경찰서 소속 형사들의 검문을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되었다가 광주 제4수원지에서 참혹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타살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사인의 진실을 밝히지 못했다.
    #민주조선 #반미자주화운동 #미제침략백년사 #의문사
  • 조철현(曺哲鉉)(비오) 1937.04.01. ~ 2016.09.21.광산군 본량면 (광산구 북산동) 출생
    조비오는 1969년 광주대교구 사제로 서품됐고, 1976년 계림동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았다. 5·18민중항쟁 당시 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88년 MBC다큐멘터리를 통해 헬기 기총소사에 대한 증언을 했다가 고발을 당했다. 1994년 5·18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진상규명과 피해배상 등에 힘썼고, 2005년에는 ‘아리랑국제평화재단’을 설립하여 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계림동성당 #5·18수습대책위원회 #헬기기총소사증언 #5·18기념재단
  • 이기홍(李基弘) 1912.08.31. ~ 1996.12.07.전남 완도군 고금면 출생
    이기홍은 1929년 광주고보 2년 재학 중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이듬해 백지동맹을 주도하였다가 퇴학당한다. 낙향 후에는 농민운동에 투신하였고, 해방직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광주시위원을 지냈다. 종전 후에는 구국동맹사건으로 옥고를 치뤘고, 독재정권 하에 지속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생애말년에는 실명상태에서도 역사구술작업에 참여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 #백지동맹 #4·19이후혁신운동 #역사구술작업
  • 홍남순(洪南淳) 1912.07.20. ~ 2006.10.14.전남 화순군 도곡면 출생
    홍남순은 1934년 일본에서 공부하여 1948년 조선변호사 시험에 합격, 1957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발령받았다. 1963년 광주 궁동에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였고, 1967년 6·8부정선거 전면무효화 투쟁위원회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였으며 인권변호사로 활약하였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9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을 받았다.
    #인권변호사 #6·8부정선거전면무효화 #5·18수습대책위원 #횃불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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