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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 기록하다

동구 × 기록하다

광주의 원도심인 동구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 5·18민주화운동 등 근·현대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동구에서는 동구출신이거나 동구에서 활동한 근·현대 역사인물에 대한 발굴 및 기록작업을 통해 『동구의 인물 1,2』를 발간하였고, 본 발간물에 수록된 인물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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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6건 페이지 1/2

  • 박동실(朴東實) 1897.09.08. ~ 1968.12.04.전남 담양군 금성면 대판리
    서편제 판소리의 명창 박동실은 예인집안 출신으로서 9세부터 소리를 배웠는데,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지 1년만에 <춘향가>의 <이별가>를 완창하여 ‘애기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1934년부터 광주권번, 담양 지실초당 등에서 소리꾼들을 지도하였고, 광복을 전후하여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항의의 의미를 담아 창작판소리 <열사가>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1950년 월북, 1961년 최고영예인 인민배우가 되었다.
    #서편제 #열사가 #해방가 #광주권번 #지실초당
  • 심덕선(沈德善) 1895.12.07. ~ 1943.02.북구 누문리 (북동) 출생
    심덕선은 10대 초반 행상으로부터 시작, 광주장, 송정장 등을 돌며 자본을 모아 충장로에 주단포목점인 ‘남창상회’를 열어 운영하였다. 1935년 종연방적 전남공장이 설립되어 총판매를 맡게됨으로써 대표적인 한국인 상인으로 성장해 나갔고, 계유구락부의 핵심멤버로 참여하여 민중계몽운동과 빈민구제사업에 앞서기도 했다.
    #남창상회 #포목상인 #자수성가 #충장로4가 #계유구락부
  • 김후옥(金厚玉) 1910. ~ 1981.동구 수기동 출생
    김후옥은 광주지역의 청소년 운동의 선구적 지도자로서 광주지역 체육계의 인재를 기르고,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정신과 신체, 민족정신을 길러주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광주전남스카우트연맹을 창설하였다. 해방 후 대동청년단에서 활동하다가 6.25가 발발하자 전쟁에 참여, 이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 1981년 별세하였다.
    #광주전남보이스카우트창설 #체육계지도자 #광주YMCA체육관
  • 박봉우(朴鳳宇) 1934.07.14 ~ 1990.03.01.
    박봉우는 광주고등학교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두각을 보였고, 23살이 되던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휴전선」이 당선되어 등단한 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1975년 「서울하야식」을 발표 후 전주에 정착,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금호문화>(1989.9)에 「쌀이 떨어졌네」를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1990년 별세하였다. 시집으로 『휴전선』(1957년), 『황지의 풀잎』(1976년) 등이 있다.
    #광주고등학교문예부 #영도 #휴전선 #황지의풀잎
  • 오지호(吳之湖) 1905.12.24. ~ 1982.12.25.전남 화순군 동복면 출생
    빛과 색채의 화가, 오지호는 1926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1928년 제7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이른 봄>을 발표하였다. 귀국 후 개성 송도보고에 재직하였고, 김주경과 함께 한국최초의 원색화집인 『오지호·김주경 2인화집』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조선대 미술과에 교수로 부임한 후 1954년, 지산동 초가집으로 거처를 옮겨 평생의 안식처이자 작업실로 삼았다.
    #서양화가 #빛과색채의화가 #한국최초원색화집 #남향집 #지산동작업실
  • 양수아(梁秀雅) 1920. ~ 1972.10.13.전남 보성군 겸백면 출생
    양수아는 12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가와바다(川端)학교에 입학, 입체파, 야수파 등 전위적인 미술사조를 경험하였다. 1956년 광주사범대학교 미술과 교사가 되었고, 이때부터 인간 본연의 자유로운 본성을 표출하기 위해 조화와 균형미를 부정하는 ‘앵포르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한다. 제2회 현대작가초대전에 초대되는 등 작품활동은 계속되었지만, 끝내 빛을 발현하지 못하고 1972년 별세하였다.
    #앵포르멜 #가와바다미술학교 #광주사범대학교 #빨치산
  • 문병란(文炳蘭) 1935.03.28. ~ 2015.09.25.전남 화순군 도곡면 출생
    통일을 노래한 민족시인 문병란은 시인 김현승의 추천으로 「가로수」를 발표하며 등단, 유신정치체제를 거스르며 작품 속에 시대정신을 담아내었다. 1975년 전남고 교사로 근무 당시, 유신정권의 교육에 반대하는 제자들을 위해 사표를 내고 ‘거리의 교사’가 되었다. 2000년 조선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여 서은문학연구소를 열고 문학에 뜻을 둔 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민족시인 #통일염원 #저항시 #직녀에게 #거리의교사 #서은문학연구소
  • 김태만(金泰萬) 1921.09.12. ~ 1993.12.01.북구 우산동 출생
    김태만은 송정공고에 진학하여 건축에 입문하였고, 해방 후 광주시청 영선계 계장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신건축연구소를 개업하여 행정·교육·산업시설 등의 건축설계 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는데, 1967년에 완공된 관덕정이 대표적이다. 80년대 초, 광주건축학회를 맡게 된 김태만은 후학들을 위한 학회 등을 열었고, 꾸준히 현상공모전에 참여하며 그 과정을 기록하였다.
    #신건축연구소 #관덕정 #미도아파트 #광주중앙교회
  • 정추(鄭樞) 1923. ~ 2013.06.13.남구 양림동 출생
    정추는 서석초등학교와 서울 양정고보를 거쳐 일본대 예술학부 작곡과를 수료하였다. 해방 후, 평양음대 교수를 지내다가 소련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음악원에서 공부하였다. 1958년 고려인들이 살고 있던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망명, 국립여성사범대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이후 10년 동안 중앙아시아에 흩어져있던 1000여 편의 고려인 민요를 채록해 악보로 정리하였다.
    #망명음악가 #카자흐스탄_알마티 #고려인민요채록 #카자흐스탄공훈문화인
  • 정율성(鄭律成) 1914.08.13 ~ 1976.12.07동구 불로동 출생
    중국에서 3대 작곡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정율성은 광주에서 출생, 숭일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봄, 중국 남경(南京)으로 건너가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하였다. 남경과 상해를 오가며 음악공부를 하면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44년 4월 광복을 맞이했다. 1951년 4월 중국으로 건너가 1976년 12월 사망할 때까지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 「연안송」, 「팔로군행진곡」등을 남겼다.
    #중국3대작곡가 #의열단 #항일운동 #연안송 #팔로군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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