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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 기록하다

동구 × 기록하다

광주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동구는, 시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녹아있는 많은 역사적 장소들을 품고 있습니다. 동구 인문자원 기록화사업을 통해 발굴된 동구의 역사적 장소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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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18건 페이지 1/2

  • 흥학관(興學舘) 동구 광산동 100번지 일대
    흥학관은 최상현이 아버지 최명구의 환갑을 맞이하여 청년들의 수양공간으로서 1921년에 건축하여 기증하였다. 흥학관은 광주신간회, 광주청년회 등 청년·사회단체의 활동거점이었으며, 청년·노동자 등 시민을 위한 강연과 야학이 열리기도 하였고, 권투를 교습하는 등 체육시설로도 활용되었다. 흥학관을 드나들던 장재성, 왕재일 등이 독서회인 성진회를 결성,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항일운동 #시민사회운동 #야학 #흥학관권투 #광주학생독립운동 [ 사진출처 : 흥학관에서 열린 조선청년총동맹전남연맹 제2회 정기대회 (1929) ©광주광역시시청각자료실 ]
  • 증심사(證心寺) 동구 증심사길 177
    증심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철감선사가 860년에 창건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오백전(五百殿)과 대웅전·지장전(地藏殿)·비로전(毘盧殿)·적묵당(寂默堂)·종각·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오백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 사진출처 : 증심사 ]
  • 춘설헌(春雪軒) 동구 증심사길 150-21
    광주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5호인 춘설헌은 당초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최원순이 요양의 목적으로 지어 ‘석아정’으로 이름 붙였고, 1936년 민족운동가인 오방 최흥종이 물려받아 ‘오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방 이후, 의재 허백련이 물려받아 낡은 집을 허물고 현재의 벽돌집을 지어 이름을 ‘춘설헌’으로 바꾸었다. 이후 춘설헌은 전통 남종화의 산실로 전국 각처에서 몰려든 문화계 인사들의 품격 놓은 살롱이 되었다.
    [ 사진출처 : 춘설헌 ©최성욱작가 ]
  • 구.전라남도청 문화전당로 38 (현재 아시아문화전당)
    광주 전라남도청 구 본관은 1930년 12월 5일에 완공되었으며 건축가 김순하에 의해 설계되었다. 1975년 본관3층과 별관이 증축되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이었던 광주 재진입 작전으로 인한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근대문화유산) 제16호로 지정되었다. 2005년 11월, 전남도청은 무안군으로 청사를 이전하였고, 현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운영되고 있다.
    [ 사진출처 : 구.전라남도청 ⓒ광주시청각자료실 ]
  • 구.광주적십자병원 천변우로 415 (불로동 174)
    1954년에는 적십자사가 운영하는 진료소가 양림동으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와 광주적십자병원을 세웠다. 이곳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낸 곳으로서 광주의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다. 1996년 서남대학교가 인수하여 ‘서남대학교병원’으로 바뀌었다가 폐교로 인해 2018년 문을 닫았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광주의 역사를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 사진출처 : 광주적십자병원(1989) ⓒ광주시청각자료실 ]
  • 신문잡지종람소 동구 불로동 164 일대 (구.광주적십자병원 뒤)
    사립측량학교가 있던 부동정 92번지에 1901년, 전남도립광주농림학교가 생겼고, 이곳에 최한영을 비롯한 광주공립보통학교(지금의 서석초등학교) 출신이 모여 이곳에 ‘신문잡지종람소’를 열었다. 이 곳에서 회원들은 신문과 잡지를 함께 읽으며 공부와 연구를 하였는데, 3·1운동때는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운동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 사진출처 : 신문잡지종람소가 위치해있던 사립측량학교 개교 당시 전경 (©박선홍, 『광주1백년』) ]
  • 서석초등학교 동구 제봉로82번길 26
    서석초등학교는 1896년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공포된 소학교령에 따라 1896년 11월 6일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로 문을 연 광주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다. 서석초등학교는 민족교육의 요람으로서, 특히 서석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교사 송홍은 민족교육자로서 많은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2·8독립선언의 주역인 최원순, 정광호, 장영규, 신문잡지종람소 회원들, 장재성을 비롯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들, 영화감독 정준채, 작곡가 정추와 그의 형제들, 정율성의 형제들도 광주공립보통학교 출신들이다.
    [ 사진출처 : 서석초등학교 ⓒ문화재청 ]
  • 광주극장 충장로 46번길 10 (충장로5가 62-2)
    광주극장은 1935년 10월 1일, 광주면이 광주부로 승격하는 것을 기념하여 건평 400평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세계적인 권투선수 서정권 환영회가 광주권투구락부 주최로 열렸고, 조선일보 편집차장인 함상훈의 ‘조선인 의무교육 실시’에 대한 강연회가 열렸으며, 김성구의 판소리 독창회가 열리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광주극장에서 열렸다. 1968년 누전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광주극장은 전소되었고, 극장을 재건축한 이후로 지금까지 862석 단관을 가진 전국 유일의 극장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 사진출처 : 광주극장 ⓒ최성욱 ]
  • 광주교도소 동명동 200번지 일대
    조선시대에 서문안에 있었던 감옥이 지금의 동명동에 건물을 새로 지어 옮겨왔고 1923년 ‘광주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학생들이 형무소에 갇혀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중운동가들 또한 이곳에서 혹독한 고초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정치범들과 제주도 4.3사건으로 끌려온 무고한 민간인들이 이 곳에 갇혔다가, 6.25전쟁이 터진 후 학살당했다. 1961년 광주형무소는 광주교도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71년 문화동으로 옮겨 간 이후, 그 자리에는 주택지가 조성되었다
    [ 사진출처 : 일제강점기 광주형무소, ⓒ 광주역사민속박물관 ]
  • 나무전거리 경양로 일대
    계림동 오거리에서 산수동 쪽으로 나 있는 경양로 양쪽 약 350m 구간에 형성된 나무전거리라는 이름은 예전에 땔감용 나무를 파는 나무시장이 있었던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연탄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연료를 땔감용 나무에 의존했는데, 땔감용 나무는 주로 무등산에서 해왔다. 현재는 목재, 싱크대, 인테리어 등 건축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나무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 사진출처 : 나무전거리, 195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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