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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 산책하다

동구 × 산책하다

동구 인문산책길

동구에 산재해 있는 역사적, 문화적 자원들을 스토리텔링을 통해 엮어 우리지역 역사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를 도모하고자 조성되었습니다.

밝은희망길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을 따라 광주 근·현대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지금은 청춘들로 북적이는 거리의 풍경에서 광주의 희망을 찾아가는 길

전남사범학교 터 → 동명호텔 터 → 관사 터(도교육감, 시교육감, 시장, 미공보원장) → 경열사 터 → 옛 금호문화회관 → 농장다리 → 독립책방거리 → 나무전거리 → 광주형무소 터 → 동문다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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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9건

  • 전남 사범학교 옛터 장동로 23-16 (동명동 143-14, 중앙도서관 일대)
    지금의 중앙도서관과 구 광주교육과학연구원 터는 일제 강점기에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가 있었던 터이다. 전남사범학교는 보통학교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1923년 4월 개교하였고, 광주공립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였다. 1931년 총 396명의 졸업생 배출을 끝으로 폐교되었는데,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조선교육령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전남사범학교 학생들이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거 참여한 데 대한 일제의 보복조치이기도 했다.
    사진출처 전남공립사범학교 터에 세워진 표지석
  • 동명호텔 옛터 동명로 14번길 9 (동명동 154-43, 금석그린빌라)
    춘목암을 운영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조성순은 1940년 동명동에 저택을 신축하였는데, 해방과 함께 이 가옥을 수리하여, 호텔사업을 시작하였고, 이곳이 광주 최초의 호텔인 동명호텔이다. 해방 이후 광주에는 귀빈들을 모실만한 장소가 전무했고, 그래서 유명인들이 광주를 방문하면 으레 동명호텔을 찾았다. 현대식 고급호텔이 들어서면서 동명호텔도 결국 문을 닫았고, 현재는 빌라가 들어서 있다.
    사진출처 동명호텔 옛 터에 들어선 금석그린빌라
  • 경열사 터 동명로 20번길 20 일대
    동명동에는 고려 말의 명장 경열공 정지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경열사 옛터가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에 헐렸고, 그 터에 1893년 경열사유허비가 세워졌다. 정지장군유적보존회는 장군의 묘가 있는 망월동(산176번지)에 경열사를 복원하였고, 동명동에 있던 유허비도 그 곳으로 옮겨갔다.
    사진출처 경열군 정지장군
  • 옛 금호문화회관 동명로 20번길 17 (동명동 154-64)
    이곳은 화천기공주식회사 설립자인 권승관씨가 1970년대 초반에 주택용도로 지었으나, 호화주택이라며 허가가 나지 않는 바람에 이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인 금호그룹에 매각되어 금호문화회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7년에 설립된 금호문화재단은 학술행사와 예술창작지원, 문화공연 등을 통해 광주문화에 기여했다. 현재는 일신종합건설에서 매입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26년’을 이 건물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사진출처 옛 금호문화회관
  • 농장다리 동지교
    농장다리는 동명로의 중간쯤, 푸른길을 가로질러 놓여있다. 지금은 폐선되어 푸른길이 된 경전선 위에 있었던 농장다리는, 교도소의 복역수들이 교도소에서 운영하는 농장으로 일하러 다니던 길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농장다리와 연결되어 있는 ‘푸른길 문화샘터’는 광주폴리 11번째 작품으로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이었던 승효상이 농장다리와 철길에 얽힌 기억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사진출처 농장다리, 1960, ⓒ 광주시청각자료실
  • 독립책방거리 동명동 67번길 일대
    동구에는 1960-70년대 중고서적 구입의 메카였던 계림동 헌 책방 거리와 지역의 개성 넘치는 독립책방이 모여 있는 책방거리가 있다. 동명동 끝자락에 위치한 독립책방거리는 지역문화의 한축으로서, 새로운 책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광주의 독립서점 중 절반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각 책방지기들의 개성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북큐레이션, 독서클럽, 저자강연 등 다양한 책 문화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사진출처 책방심가네박씨
  • 나무전거리 경양로 일대
    계림동 오거리에서 산수동 쪽으로 나 있는 경양로 양쪽 약 350m 구간에 형성된 나무전거리라는 이름은 예전에 땔감용 나무를 파는 나무시장이 있었던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연탄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연료를 땔감용 나무에 의존했는데, 땔감용 나무는 주로 무등산에서 해왔다. 현재는 목재, 싱크대, 인테리어 등 건축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나무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출처 나무전거리, 1950년대
  • 광주형무소 터 동명동 200번지 일대
    조선시대에 서문안에 있었던 감옥이 지금의 동명동에 건물을 새로 지어 옮겨왔고 1923년 ‘광주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학생들이 형무소에 갇혀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중운동가들 또한 이곳에서 혹독한 고초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정치범들과 제주도 4.3사건으로 끌려온 무고한 민간인들이 이 곳에 갇혔다가, 6.25전쟁이 터진 후 학살당했다. 1961년 광주형무소는 광주교도소로 이름이 바뀌었고, 1971년 문화동으로 옮겨 간 이후, 그 자리에는 주택지가 조성되었다
    사진출처 일제강점기 광주형무소, ⓒ 광주역사민속박물관
  • 동문다리 터 現 대인시장 동문다리 입구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일본 왕 메이지의 생일을 경축하는 ‘명치절’ 기념식에서 기미가요 제창과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하교한 뒤, 나주역에서 충돌했던 일본인 학교 광주중학교 학생들과 다시 광주역에서 부딪쳤다. 일본학생들이 밀려 동문다리 쪽으로 달아나자, 조선학생들은 그들을 추격했고, 동문다리(현재 대인시장 입구)에서 가로막는 경찰과 대치했다. 이후 본정통(현 충장로)을 거쳐 도청으로 전진, 천변을 따라 내려와 부동교를 건너 해산했다. 다음날부터 일제의 검거선풍이 불어 많은 학생들이 퇴학당하거나 옥고를 치렀다. 일제의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전국에 확산되어 다음해 3월까지 전국학생독립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사진출처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시가지 시위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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