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인문도시 동구 온라인기록관

동구아카이브인물

문병란(文炳蘭) 1935.03.28. ~ 2015.09.25.전남 화순군 도곡면 출생
통일을 노래한 민족시인 문병란은 시인 김현승의 추천으로 「가로수」를 발표하며 등단, 유신정치체제를 거스르며 작품 속에 시대정신을 담아내었다. 1975년 전남고 교사로 근무 당시, 유신정권의 교육에 반대하는 제자들을 위해 사표를 내고 ‘거리의 교사’가 되었다. 2000년 조선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여 서은문학연구소를 열고 문학에 뜻을 둔 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기도 하였..
more
김태만(金泰萬) 1921.09.12. ~ 1993.12.01.북구 우산동 출생
김태만은 송정공고에 진학하여 건축에 입문하였고, 해방 후 광주시청 영선계 계장으로 1년간 근무하다가 신건축연구소를 개업하여 행정·교육·산업시설 등의 건축설계 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는데, 1967년에 완공된 관덕정이 대표적이다. 80년대 초, 광주건축학회를 맡게 된 김태만은 후학들을 위한 학회 등을 열었고, 꾸준히 현상공모전에 참여하며 그 과정을 기록하였다.
more
왕재일(王在一) 1904. ~ 1961.전남 구례군 방광면(현 광의면) 출생
왕재일은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26년 11월 장재성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였다. 성진회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하였고, 이로 인해 왕재일은 관련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장흥지역 농민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루기도 하였다. 해방 후 1947년 『동광신문』 편집차장을 지내다가 1961년, 산수동 오막살이 토..
more
박봉우(朴鳳宇) 1934.07.14 ~ 1990.03.01.
박봉우는 광주고등학교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두각을 보였고, 23살이 되던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휴전선」이 당선되어 등단한 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1975년 「서울하야식」을 발표 후 전주에 정착,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금호문화>(1989.9)에 「쌀이 떨어졌네」를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1990년 별세하였다. 시집으로 『휴전선』(1957년), 『황지의 풀잎』(..
more
조철현(曺哲鉉)(비오) 1937.04.01. ~ 2016.09.21.광산군 본량면 (광산구 북산동) 출생
조비오는 1969년 광주대교구 사제로 서품됐고, 1976년 계림동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았다. 5·18민중항쟁 당시 수습위원회에서 활동하였으며, 1988년 MBC다큐멘터리를 통해 헬기 기총소사에 대한 증언을 했다가 고발을 당했다. 1994년 5·18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진상규명과 피해배상 등에 힘썼고, 2005년에는 ‘아리랑국제평화재단’을 설립하여 평화운동을 전개..
more
현재 1페이지, 전체 페이지

동구아카이브장소

가네보 제사공장(종연방적) 남문로 676번지 일대 (학동 삼익세라믹/평화맨션 일대)
1930년대 300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린 공장이 있었는데, 학동 삼익세라믹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종연방적’이다. 당시 사람들은 종연방적의 본어 발음 ‘가네부치’를 줄여 ‘가네보’라고 부르기도 했고, ‘종방’이라고도 했다. 종연방적은 일본과 미국에 판매하는 전남의 명주실 생산의 전진기지였다. 당시 대다수의 노동자가 10대 소녀들이었고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more
자혜의원 전남대병원 일대
지금의 전남대병원은 1910년 광주 자혜의원으로 설립되었는데, 이는 전국의 주요도시에 설치했던 국립의료기관이었다. 자혜의원은 본래 전남도청 옆에 ‘관찰부 서기청’으로 쓰던 한옥건물이었는데, 1915년 지금의 전남대병원 자리로 이전했다. 1925년 도립광주병원으로 개칭, 1944년 광주의학전문학교가 설립되어부속병원으로 개편하였다. 1946년 광주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
more
나무전거리 경양로 일대
계림동 오거리에서 산수동 쪽으로 나 있는 경양로 양쪽 약 350m 구간에 형성된 나무전거리라는 이름은 예전에 땔감용 나무를 파는 나무시장이 있었던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연탄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연료를 땔감용 나무에 의존했는데, 땔감용 나무는 주로 무등산에서 해왔다. 현재는 목재, 싱크대, 인테리어 등 건축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나무와의 인연을 이어..
more
춘목암 · 광주미국문화원 서석로 29-2 (황금동 80번지)
이 곳에는 일제 때 광주시내에서 제일 가는 요릿집 '춘목암(春木庵)' 이 있었다. 441평의 부지에 연건평 221평 규모의 건물로, 당시 광주의 유일한 조선인건축가인 김순하가 설계하였다. 해방후 적산(敵産)으로 미군정이 관리하였고, 광주미국공보원을 거쳐 광주미국문화원이 되었다. 5.18민주화운동 이후 광주지역 반미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으며, 이곳을 점..
more
뽕뽕다리(미밋교) 학동
지금의 방림교 자리에는 1970년대에 세운 ‘밋밋교’ 또는 ‘미밋교’라고 부르던 다리가 있었다. ‘밋밋교’ 또는 ‘미밋교’란 이름은 다리너머 방림동의 별칭을 딴 것인데, 들이라고 부르기도, 산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밋밋한 구릉지였던 데서 생긴 지명이었다. 밋밋교는 ‘뽕뽕다리’라고도 불렸는데, 다리의 상판이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more
현재 1페이지, 전체 페이지

동구아카이브발간물

동구의 인물 – 빛이네 가족의 역사인물여행 1
동구의 인물 – 빛이네 가족의 역사인물여행 1
more
분수대 원풍경
분수대 원풍경
more
충장동의 시간을 걷다
more
계림동의 시간을 걷다
more
흥학관, 광주사람들
more
현재 1페이지, 전체 페이지
비주얼2
인문산책길 동구의 인문자원을 통해 광주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사색의 길”이라면서 “인문산책길을 걸으며 선현들이 지향한 광주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좌우스크롤 하시면 해당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무등가는길

  • 학동8거리와 백화마을
    학동8거리와 백화마을 광주백범기념관, 동구 천변우로 599
    학동 8거리는 궁민구제를 위해 일제의 ‘광주 갱생지구 설계도’에 따라 건설된 곳으로, 사방으로 길을 낸 다음 그 사이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을 내 8개의 골목을 만들고 도로, 우물, 하수구 등의 제반 시설을 완비하여 건설한 곳이다. 이 곳은 재개발로 사라져 현재는 아파트(학2마을)가 들어서 있다. 학동8거리 옆에 있었던 백화마을은 광복 직후 전라도에 내려온 백..
    자세히보기
  • 무등산
    무등산
    역사적으로 광주를 대표하는 산으로 인식되어 온 무등산(1,187m)은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무등산 정상 인근에 있는 돌기둥인 주상절리대는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었다. 산 곳곳에 김덕령 장군에 대한 전설이 많이 남아 있으며, 특산물로는 무등산 수박이 있다.
    자세히보기
  • 춘설헌(春雪軒)
    춘설헌(春雪軒) 동구 증심사길 150-21
    광주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5호인 춘설헌은 당초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최원순이 요양의 목적으로 지어 ‘석아정’으로 이름 붙였고, 1936년 민족운동가인 오방 최흥종이 물려받아 ‘오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방 이후, 의재 허백련이 물려받아 낡은 집을 허물고 현재의 벽돌집을 지어 이름을 ‘춘설헌’으로 바꾸었다. 이후 춘설헌은 전통 남종화의 산실로 전국 ..
    자세히보기
  • 증심사(證心寺)
    증심사(證心寺) 동구 증심사길 177
    증심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철감선사가 860년에 창건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松廣寺)의 말사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오백전(五百殿)과 대웅전·지장전(地藏殿)·비로전(毘盧殿)·적묵당(寂默堂)·종각·일주문·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오백전을 제외한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자세히보기

광주정신원형길

  • 서석초등학교
    서석초등학교 동구 제봉로82번길 26
    서석초등학교는 1896년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공포된 소학교령에 따라 1896년 11월 6일 전라남도 관찰부 공립소학교로 문을 연 광주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다. 서석초등학교는 민족교육의 요람으로서, 특히 서석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교사 송홍은 민족교육자로서 많은 제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2·8독립선언의 주역인 최원순, 정광호, 장영규, 신문잡지종람소 회원들, 장..
    자세히보기
  • 현덕신병원 터
    현덕신병원 터 동구 문화전당로 20 (남동 40번지) 일대
    호남최초의 여의사, 현덕신(玄德信)의 병원이 있던 터이다. 현덕신은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 유학시절 2.8독립선언 준비를 위해 독립자금을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귀국 후 동대문부인병원에서 의사로서 조선 여성을 위하여 투신하였다. 일본 유학중에 알게 된 최원순과 결혼하고 광주에 정착, 의사로서 지역사회에 헌신하였다. 1949년 현덕신병원 안에 신생유치원..
    자세히보기
  • 흥학관 터
    흥학관 터 문화전당로35번길 8 (광산동 100번지) 일대
    흥학관은 1921년 광주의 유지였던 최명구가 회갑을 기념하여 지어 기증한 곳으로서 ‘흥학관’이라는 이름처럼 광주 사람들이 배우고 익히며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민의의 광장이요, 민족운동의 근거지였다. 다양한 사회단체가 모여 광주전남 지역사회의 현안과 문제를 진단하고 토론하고 결정을 내린 진보적 활동의 거점이었고, 광주 교육의 거점..
    자세히보기
  • 장재성·장매성 생가터
    장재성·장매성 생가터 백서로 125번길 19-9 (금동 96,97번지) 일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장재성과 여동생 장매성의 생가 터이다. 장재성은 광주고보를 졸업, 일본유학 중 학교를 중퇴하고 돌아와 고등보통학교생 등과 함께 비밀리에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한 핵심인물로서, 관련자 중 가장 무거운 중형을 받기도 하였다. 장매성은 장재성의 동생으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당시 독서회 성격의..
    자세히보기
  • 정율성생가 터
    정율성생가 터 서석로 10번길 5 (불로동 161번지) 일대
    중국에서 3대 작곡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정율성은 광주에서 출생, 숭일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봄, 중국 남경(南京)으로 건너가 의열단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한 뒤 남경과 상해를 오가며 음악공부를 하였다. 항일구국운동이 한창이던 1936년 조선민족해방동맹에서 활동하는 등 음악공부를 하면서도 쉬지 않고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1944년 4월 연안으로 돌아온 뒤 광복을..
    자세히보기
  • 신문잡지종람소 터
    신문잡지종람소 터 서석로 10번길 3 (불로동 164, (구)광주적십자병원 뒤) 일대
    사립측량학교가 있었던 부동정 92번지에 1910년 6월 전남도립광주농림학교가 생겼다. 한옥건물로 작은 규모의 학교였고, 실습지는 광주천 넘어 양림동에 있었다. 1917 1917년 최한영을 비롯한 광주공립보통학교(지금의 서석초등학교) 출신이 모여 이 곳에 '신문잡지종람소'를 열었다. 이 곳은 신문과 잡지를 함께 읽고, 공부와 강연, 소식을 주고받는 장이었다. 3.1..
    자세히보기
  • 부동교
    부동교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무렵, 광주 큰 장터 모래사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후 3시 30분, 수백 명의 군중이 모이자, 김복현·김강·서정희 등은 시위 군중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운동의 개시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치고 국기를 휘날리며 강가 모래밭에서 언덕으로 올라와 부동교 밑 작은 시장으로 출발였다. 이렇게 시작..
    자세히보기
  • 호남동성당
    호남동성당 천변우로 393-17 (호남동 67)
    호남동성당 자리는 호남은행의 설립자, 현준호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바로 옆 집인 호남동 95번지(부정동 18번지)는 현준호의 손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외증조부인 김신석의 집이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조비오(조철현) 신부가 헬리콥터가 발포하는 광경을 본 곳도 이 곳 호남동성당의 마당이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평화 수습책을 논의하고 도청으로 나가려고 결의하..
    자세히보기
  • 광주극장
    광주극장 충장로 46번길 10 (충장로5가 62-2)
    광주극장은 1935년 10월 1일, 광주면이 광주부로 승격하는 것을 기념하여 건평 400평에 2층 규모로 지어졌다. 세계적인 권투선수 서정권 환영회가 광주권투구락부 주최로 열렸고, 조선일보 편집차장인 함상훈의 ‘조선인 의무교육 실시’에 대한 강연회가 열렸으며, 김성구의 판소리 독창회가 열리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광주극장에서 열렸다. 1968년 누전이 원인으로 추정되..
    자세히보기
  • 장재성빵집, 김기권문방구 터
    장재성빵집, 김기권문방구 터 금남로3가 금남로공원 일대
    1929년 비밀결사조직 ‘성진회’의 핵심인물이었던 장재성이 독서회 운영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비조합을 설립하기로 하고, 김기권 등이 출자하여 조합을 설립하였다. 이곳이 바로 김기권 문방구점(광성문구점)이다. 장재성은 문방구점의 2층에 빵집을 열고 독서회원의 모임 및 토론장소로 활용하였다. 그곳은 광주의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모여 독립을 위해 무엇..
    자세히보기
  • 광주우체국
    광주우체국 충장로2가 16 (충장로94)
    광주우체국의 시작은 1897년 12월 불로동 서문통, 적십자병원 뒤편에 설치된 광주우체사였다. 1906년 7월 광주우편국으로 승격되었고, 1949년 11월 광주우체국으로 개칭되었다. 1897년 12월부터 우체 업무를 시작했고, 1910년 12월 12일 전화교환 업무를 개시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63년에  세웠다. 충장로가 최고 번성기를 누린 1970년대와 80년대, 이곳은 젊은이들이 만남..
    자세히보기
  • 본원사 터
    본원사 터 중앙로 160번길 16-7 (불로동 1-21)
    본원사는 일본의 승려 오쿠무라 엔싱이 전남 관찰사인 윤웅렬의 도움을 받아 세운 일본사찰이다. 본원사는 광주와 목포를 오가는 일본 관헌의 숙소이자 일경과 정탐꾼들의 아지트였다. 사찰이었지만 사찰이 아닌 일본인들이 광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다. 해방이 되자 광주사람들은 본원사를 가만두지 않았고, 폐사 후 건축가 김순하가 사장으로 있었던 삼육건설사가 자리를 잡았..
    자세히보기

뜻세움길

  • 동오층석탑
    동오층석탑 지산동 448-48
    광주시내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2기의 탑 가운데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1955년 해체, 수리할 때 4층 지붕돌 윗면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고, 1961년에 다시 수리를 하여 일부 석재를 보완하였다. 광주 전남지방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5층석탑 가운데서도 우수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자세히보기
  • 시인 문병란의 집
    시인 문병란의 집 밤실로 4번안길 16 (지산동 267-11)
    문병란시인이 별세할때까지 거주했던 집으로, 최근 기념공간으로 재단장하여 ‘시인 문병란의 집’으로 문을 열었다. 문병란시인은 통일을 노래한 민족시인 문병란은 시인 김현승의 추천으로 「가로수」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첫 시집 『문병란시집』(1971), 제2시집 『정당성』(1973), 제3시집 『죽순밭에서』(1977)를 발표, 유신정치체제를 거스르며 그의 작품 속에 시대정신..
    자세히보기
  • 오지호 가옥
    오지호 가옥 지호로 81-20 (지산동 275)
    오지호화백이 거주했던 초가집이다. 오지호는 전남 화순군 동복면 출신으로 1926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1928년 제7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이른 봄>을 발표하였다. 귀국 후 개성 송도보고에 재직하였고, 김주경과 함께 한국최초의 원색화집인 『오지호·김주경 2인화집』을 발간했다. 1948년, 광주로 귀향하여 ‘광주미술연구회’를 결성하고, 개인전을 열었다..
    자세히보기
  • 이한열 열사의 집
    이한열 열사의 집 지호로 106번길 4 (지산동 217-1)
    이한열열사가 학창시절 거주했던 집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이한열은 화순군에서 태어나 1970년 광주 지산동으로 이사를 와서 정착한 광주의 청년이다.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후 학생운동조직에서 활동하며 광주의 5월을 접하고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향한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져가는 가운데 6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결의..
    자세히보기
  • 자운사
    자운사 지호로 106번길 8-8 (지산동 95-3)
    지호로를 따라 무등산으로 올라가는 길 오른편에는 자운사라는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대웅전에는 고려 후기의 목조불상인 국가지정 보물 제1507호 목조아미타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조각기법이 자연스럽고 자태가 수려하며 신체비례가 적당하여 원만상을 보이는 등 뛰어난 조형성을 보여준다.
    자세히보기
  • 지산유원지
    지산유원지 지호로 164번길 23(지산동 산56-4)
    지산유원지는 지산동 산 50번지 일대에 1978년 완공했다. 3만 4천평의 부지에 리프트카, 옥외풀장, 비행장, 데이트컵, 회전목마, 관광열차, 동물원, 보트장, 전망대, 서운각 등이 있었다. 1990년에 온천수를 개발, 무등산관광호텔이 들어섰다. 유원지 꼭대기에 팔각정을 만들 때 주민들이 풍수지리상 뱀의 등에 해당하는 자리이므로 개발하면 재앙이 따른다고 반대하기도 했다...
    자세히보기

밝은희망길

  • 전남 사범학교 옛터
    전남 사범학교 옛터 장동로 23-16 (동명동 143-14, 중앙도서관 일대)
    지금의 중앙도서관과 구 광주교육과학연구원 터는 일제 강점기에 전라남도공립사범학교가 있었던 터이다. 전남사범학교는 보통학교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1923년 4월 개교하였고, 광주공립보통학교(현 서석초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였다. 1931년 총 396명의 졸업생 배출을 끝으로 폐교되었는데, 이것은 조선총독부의 조선교육령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전남사범학교 학생들..
    자세히보기
  • 동명호텔 옛터
    동명호텔 옛터 동명로 14번길 9 (동명동 154-43, 금석그린빌라)
    춘목암을 운영해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조성순은 1940년 동명동에 저택을 신축하였는데, 해방과 함께 이 가옥을 수리하여, 호텔사업을 시작하였고, 이곳이 광주 최초의 호텔인 동명호텔이다. 해방 이후 광주에는 귀빈들을 모실만한 장소가 전무했고, 그래서 유명인들이 광주를 방문하면 으레 동명호텔을 찾았다. 현대식 고급호텔이 들어서면서 동명호텔도 결국 문을 닫았고, 현..
    자세히보기
  • 경열사 터
    경열사 터 동명로 20번길 20 일대
    동명동에는 고려 말의 명장 경열공 정지장군을 기리는 사당인 경열사 옛터가 있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에 헐렸고, 그 터에 1893년 경열사유허비가 세워졌다. 정지장군유적보존회는 장군의 묘가 있는 망월동(산176번지)에 경열사를 복원하였고, 동명동에 있던 유허비도 그 곳으로 옮겨갔다.
    자세히보기
  • 옛 금호문화회관
    옛 금호문화회관 동명로 20번길 17 (동명동 154-64)
    이곳은 화천기공주식회사 설립자인 권승관씨가 1970년대 초반에 주택용도로 지었으나, 호화주택이라며 허가가 나지 않는 바람에 이 지역의 대표적인 기업인 금호그룹에 매각되어 금호문화회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7년에 설립된 금호문화재단은 학술행사와 예술창작지원, 문화공연 등을 통해 광주문화에 기여했다. 현재는 일신종합건설에서 매입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자세히보기
  • 농장다리
    농장다리 동지교
    농장다리는 동명로의 중간쯤, 푸른길을 가로질러 놓여있다. 지금은 폐선되어 푸른길이 된 경전선 위에 있었던 농장다리는, 교도소의 복역수들이 교도소에서 운영하는 농장으로 일하러 다니던 길이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농장다리와 연결되어 있는 ‘푸른길 문화샘터’는 광주폴리 11번째 작품으로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이었던 승효상이 농장다리와 ..
    자세히보기
  • 독립책방거리
    독립책방거리 동명동 67번길 일대
    동구에는 1960-70년대 중고서적 구입의 메카였던 계림동 헌 책방 거리와 지역의 개성 넘치는 독립책방이 모여 있는 책방거리가 있다. 동명동 끝자락에 위치한 독립책방거리는 지역문화의 한축으로서, 새로운 책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광주의 독립서점 중 절반이 위치해 있는 곳이다. 각 책방지기들의 개성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북큐레이션, 독서클럽, 저자강연 등 다양한 책 ..
    자세히보기
  • 나무전거리
    나무전거리 경양로 일대
    계림동 오거리에서 산수동 쪽으로 나 있는 경양로 양쪽 약 350m 구간에 형성된 나무전거리라는 이름은 예전에 땔감용 나무를 파는 나무시장이 있었던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연탄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연료를 땔감용 나무에 의존했는데, 땔감용 나무는 주로 무등산에서 해왔다. 현재는 목재, 싱크대, 인테리어 등 건축자재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나무와의 인연을 이어..
    자세히보기
  • 광주형무소 터
    광주형무소 터 동명동 200번지 일대
    조선시대에 서문안에 있었던 감옥이 지금의 동명동에 건물을 새로 지어 옮겨왔고 1923년 ‘광주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학생들이 형무소에 갇혀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중운동가들 또한 이곳에서 혹독한 고초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정치범들과 제주도 4.3사건으로 끌려온 무고한 민간인들이 이 곳에 갇..
    자세히보기
  • 동문다리 터
    동문다리 터 現 대인시장 동문다리 입구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일본 왕 메이지의 생일을 경축하는 ‘명치절’ 기념식에서 기미가요 제창과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하교한 뒤, 나주역에서 충돌했던 일본인 학교 광주중학교 학생들과 다시 광주역에서 부딪쳤다. 일본학생들이 밀려 동문다리 쪽으로 달아나자, 조선학생들은 그들을 추격했고, 동문다리(현재 대인시장 입구)에서 가로막는 경찰과 대치..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