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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소개

충장동(忠壯洞) : 대인동·충장로1·2·3·4·5가, 수기동, 금남로1·2·3·4·5가, 궁동, 장동, 불로동, 황금동, 호남동

대금동(대인동,금남로5가), 충수동(충장로5가,수기동), 대의동(궁동,장동), 충금동(충장로1,2,3,4가,금남로1,2,3,4가), 삼성동(불로,황금,호남동)을 통합하여 1998년 충장동으로 칭함 대인동은 일제때 이름 大正町에서 비롯됐고, 충장로는 김덕령 장군의 시호를 땄으며 금남로는 정충신 장군의 군호를 땄다.
수기동은 공수방면과 기례방면에서 비롯됐으며, 공수방면은 관청 필수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사는 동네라고 하지만 본디 중앙에서 지방으로 나가는 관리의 숙박, 접대등에 드는 경비를쓰기 위해 州에 나누어준 토지 라는 뜻이다.
궁동은 성안의 활터에서 비롯됐고 장동은 농장다리에서 연유 됐으며, 불로동은 부동방면에서 땄는데 不動의 뜻은 不動尊의 약칭으로 5대 대존명왕의 하나이다.
밀교에서 이르기를 대일여래가 일체의 악마를 항복 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변신하여 나타난 것 이라 한다 불교에서 不動法은 재앙을 없애고 이익을 얻으려 할 때 ?駭?기도를 이르는 말로 不動坊에 광주고을 사직단과 성황당등이 있었다.

동명동 (東明洞)

광주읍성의 동문밖에 있다해서 "동박에"라 했고, 동계천가에 있어 "동계"로도 불리다가 1946년동명동이라 칭함.

계림동 (鷄林洞 )

경양방죽제방에 우거진 숲과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닭을 많이 길러 수풀속에서 닭울움소리가 들렸다해서 1947년 계림동으로 칭함.
한편 방죽매립으로 새땅이 되었다하여 새벌을 한자로 표기하여 계림이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음.
사실은 동계천하류로 옛날제단이 있던 숲속마을이었기때문이다.

산수동 (山水洞)

山紫水麗한 동네라 하여 산수라 칭함.

지산동 (芝山洞)

지막리의 이름을 따서 1935년 지산으로 칭함. 지막은 기와의 사투리인 "지와"를 한자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서남동 (瑞南洞): 광산동·남동·금동·서석동

금동(광산동,남동,금동) 서석동 의 머릿글자을 합해 1998년 서남동으로 칭함.
남동은 광주의 읍성의 남문, 금동은 금계(광주천)에서 각각 비롯됐으며, 서석동은 서석산(무등산)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서남리가 했다가 1930년 서석으로 칭함.

학 동 (鶴洞)

무등산 줄기가 학처럼 내려와 앉은 구릉지라 해서 학강이라 하다가 1947년 학동을 개칭함.

학운동(鶴雲洞) : 운림동

학동과 운림동의 첫 자를 따서 1970년 학운동으로 칭함. 운림동은 운곡과 신림이 합해짐.

지원동(池元洞): 내남·선교·소태·용산·용연·월남동

옛 지한면의 이름을 따서 1957년 지원동으로 칭함.
수원지가 있는 곳이란 뜻도 지님.
소태동은 소태실, 용연동은 용솟골에서 각각 비롯됐다.
용산동은 용강과 화산(꽃메), 월남동은 월동(칠전)과 주남 내남동은 내지(육판이)와 남계 선교동은 선동과 교항(다리목)이 각각 합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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