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동구소개

개요

일부정치군인들은 불법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80년 5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확대하였다.

5.17계엄확대는 10.26이후 한 걸음 한걸음 진행되어 온 대다수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신군부는 이미 각 지역에 계엄군을 배치,자신들의 음모를 드러냈고 광주에서 작전명 '화려한 휴가'를 실행해 옮겼다.

80년 봄. 민주화 열기가 드높던 광주에서는 5월 18일 대학생들을 선두로 비상계엄확대를 반대하는 시위가 전개되었다. 항쟁의 도화선은 5월 18일 오전 10시 전남대 정문앞에서 최초로 붙었다. 계엄군의 강경진압에 쫓긴 학생들은 금남로 등 시내로 이동하여 시위를 전개했다.

이렇듯 5.18민주화운동은 불법적으로 집권을 획책하는 신군부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어선 시민 봉기다. 항쟁기간동안 치안 부재의 상황임에도 금융기관이나 금은방 등에서 절도 한건 발생하지 않은 수준 높은 시민 정신이 발휘되었다.

또한 헌혈 행렬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고 어려운 가운데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런 사실은 5.18 민주화운동이 세계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이성적, 초도덕적 투쟁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5·18 진상규명 요구에 의해 80년 당시 신군부 세력들은 법적 단죄를 받았으며 5.18민주화 운동은 유신체제를계승한 제5공화국 정권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여 끝내 그 체제를 붕괴시키고 문민정부를 탄생시켰으며, 50년만의 여·야간 정권교체를 이루어 내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결국 5·18은 과거의 역사적인 민중항쟁을 통해 표출되었던 자주·민주·통일의 전통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민주주의 발전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민권 투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개요 이미지

콘텐츠 만족도 조사
콘텐츠 만족도 조사 [평균 3.2857점 / 49명 참여]

0/100